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패트릭 유잉 (문단 편집) ====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지핀 마지막 불꽃 ==== 다음 시즌인 1999-2000 시즌에도 유잉은 여전히 닉스에서 뛰었다.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당했던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 유잉은 시즌 초반 20경기를 결장하였고[* 재미있는 것은 유잉이 결장했던 기간동안 유잉 대신 주전 센터를 맡아줬던 선수가 2년 전 유잉이 당했던 시즌 아웃급 부상의 원인 제공자였던 앤드류 랭이었다. 당시 밀워키 벅스 소속이었던 랭은 이후 시카고 불스를 거쳐 뉴욕 닉스에 합류하는데, 당시 닉스는 유잉의 백업 센터 크리스 더들리마저 무릎 부상으로 개막전부터 출전이 불가능하게 되자 시즌 개막을 한달 여 앞두고 급히 제 3의 센터로 랭을 영입했다. 유잉에게 부상을 입혔을 당시 고의로 파울한 것도 아니었던지라 유잉과의 관계는 별 문제 없었다고 한다.], 12월 10일 필라델피아와의 홈경기에서 간신히 컴백할 수 있었다.[* 스타팅 센터로 출전해 30분을 뛰었지만 야투를 8개 던져 단 하나도 성공시키지 못했을 정도로 경기 감각이 매우 무뎌진 상태였다. 그나마 자유투를 7개 적중시켜 7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해 팀 승리에 약간이나마 지분을 보탰다. 그 다음 경기인 보스턴과의 경기에서도 야투 11개를 시도해 3개만 적중시키며 9득점에 그치는 등 경기 감각을 되찾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복귀 후 세 번째 경기인 휴스턴과의 경기에선 60%의 야투율과 함께 20득점을 기록하며 엘리트 센터로서의 위용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이미 38세의 노장이었던 유잉은 그 컴백 이후 정규 시즌 동안 단 한 경기도 결장하지 않고 남은 62경기를 모두 선발로 출전하면서 팀의 정신적 지주로 활약했다. 더 이상 전성기와 같은 득점력을 보여주지 못하자 공격에서는 스스로 트윈테러에 이은 제 3옵션을 자처했고, 대신 유잉은 리바운드와 블로킹, 박스아웃에 집중하며 여전히 닉스 프론트 코트 수비라인의 핵으로 활약했다. [[파일:ewing.jpg]] 매 경기가 끝날 때 마다 유잉은 골절 부상을 입었던 손목과 이미 연골이 다 닳아서 없어져버린 양쪽 무릎을 얼음팩으로 둘둘 말고, 아킬레스건을 다친 발목 부상 부위는 얼음통에 담그고 있어야 하는 처참한 몰골이었고, 진통제까지 써야할 정도로 몸상태가 만신창이 그 자체였다.[* 일반인이었으면 심각한 후유증으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갔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그는 매 경기당 32.8분을 소화하며 경기당 평균 15득점 9.7리바운드로 더블-더블에 준하는 활약을 펼쳤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면 유잉을 제외한 나머지 4대 센터 가운데 유잉과 같은 만 37세의 나이에 유잉보다 나은 성적을 기록한 선수가 없다는 것이다. 만 37세 시즌을 기준으로 올라주원은 44경기 출전에 경기당 평균 23.8분 10.3득점 6.2리바운드, 데이비드 로빈슨 64경기 출전에 경기당 평균 26.2분 8.5득점 7.9리바운드, 샤킬 오닐 53경기 출전에 경기당 평균 23.4분 12득점 6.7리바운드에 그쳤다. 4대 센터 중 가장 평가가 낮은 유잉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늦은 나이까지 더블-더블이 가능한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던 선수는 유잉이었던 셈. 이는 나머지 세 선수가 선수 생활 전반을 운동능력에 상당 부분 의존해왔던지라 30대 후반에 그만큼 낙폭이 컸던 반면, 이미 데뷔 초 무릎부상으로 운동능력을 모두 상실했던 유잉은 그 때부터 신체능력보다는 철저한 기본기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많은 나이와 만신창이가 된 몸상태에도 불구하고 저런 준수한 성적을 기록할 수 있었던 비결.[* 이는 [[팀 던컨]]과 비슷하다. 별명이 '''"미스터 기본기"'''라는 것에서 모든 설명이 끝난다. 물론 던컨도 은퇴 시즌에는 급격한 노쇠화를 겪고 끝내 은퇴를 선언하긴 했지만. 참고로 은퇴 시즌인 2015-16시즌 당시 던컨의 나이는 무려 '''39세'''였다.] 모두가 닉스의 우승은 안된다고, 힘들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유잉 그 자신은 우승이라는 선수 생활 마지막 목표를 향해 본인이 가진 모든 것을 내던졌다. 기자들이 우승에 대해 물을 때마다 유잉은 "시즌이 끝난 다음에 얘기합시다. 그 때쯤이면 내 손엔 챔피언 반지가 끼워져 있을테니까." 라는 말로 일축하며 온전히 경기에만 집중했다.~~오오 상남자!~~ 당시 닉스의 담당 기자 중 한 명은 ''이미 농구선수로 뛸 수 있는 몸이 아니지만 게임에 대한 열정이 그를 뛰게 만들고 있다''는 말로 유잉의 정신력을 극찬하였다. 그 시즌 초반 불의의 부상으로 은퇴를 하게 되었던 또다른 무관의 제왕 [[찰스 바클리]] 도 유잉을 일컬어 ''설령 유잉이 챔피언십 트로피를 뉴욕으로 가져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고 해도, 그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를 안다면 어느 누구도 그를 비난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당시 국내 NBA 중계를 담당했던 SBS 스포츠에서 [[김성주]] 캐스터와 짝을 이뤄 해설을 맡았던 경향신문 유신모 기자도 2000시즌 플레이오프 기간동안 유잉의 닉스에 대한 소회를 밝힌 적이 있다. 냉정하게 말해서 닉스의 우승은 어렵다고 보지만, 그래도 한 경기 한 경기마다 어떻게든 끈질기게 상대를 물고늘어져 기어이 역전승을 만들어내고, 그런 경기를 하나둘씩 쌓아가며 플레이오프 관문을 하나하나 통과해나가는 닉스가 굉장히 인상깊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지켜보고 싶다는 취지의 소회를 밝힌 적이 있다.] 유잉의 활약으로 닉스는 세 시즌만에 다시 정규 시즌 50승 고지를 탈환하며 3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만난 상대는 [[빈스 카터]]와 [[트레이시 맥그레이디]]가 이끌던 [[토론토 랩터스]]. 워낙 당시 카터의 퍼포먼스가 쩔었고 마침 닉스는 정규 시즌에서 토론토에 1승 3패로 열세였던지라 첫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뤄낸 토론토의 사기는 무척 높았고 업셋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던 시리즈였다. 하지만 유잉과 닉스는 토론토를 3연승으로 스윕시켜버리며 관광을 보내버린다.~~어서와 플레이오프는 처음이지?~~ 그리고 다음 2라운드의 상대는 4년 연속으로 만나게 된 라일리의 히트. 닉스와 히트는 다시 한 번 7차전까지 가는 대 접전끝에 결국 닉스는 7차전에서 83-82의 1점차 승리를 거두고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다. 특히 2승 3패로 뒤진 6차전에서 유잉은 무려 42분을 뛰며 15득점 18리바운드, 최종 7차전에서는 20득점 10리바운드 2블록과 더불어 결승점이 되는 역전 투핸드 덩크를 작렬시키며 위기상황에서 앞장서 팀을 이끌었다.[* 참고로 이 때 히트가 경기 막판 82:81로 앞선 상황에서 [[알론조 모닝]]이 공을 잡은 유잉에게 무리한 스틸을 시도하다가 오픈 찬스를 내주고 유잉은 곧장 투핸드 덩크를 꽂아 닉스가 83:82로 앞서나갔다. 현지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당시 경기 중계의 해설을 맡은 유신모 기자가 모닝의 실수라고 지적한 플레이였는데 공교롭게도 이후 양 팀이 수 차례 공방을 펼쳤지만 어느 팀도 득점을 추가하지 못해 경기는 그대로 닉스의 1점차 승리로 끝나버렸다.]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또 다시 [[레지 밀러]]가 이끄는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만나게 되었다. 인디애나는 전년도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맹렬하게 달려들었고, 닉스 또한 주전과 백업 가리지 않고 모두가 크고 작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2년 연속 파이널 진출을 위해 허슬도 불사하며 맞불을 놓았다. 4차전까지 시리즈 스코어는 서로 2승 2패를 기록했지만 레지 밀러와 제일런 로즈의 불붙은 공격력 앞에 닉스는 결국 5차전과 6차전을 연달아 내주며 2승 4패로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6차전 종료 직전 MSG의 뉴욕팬들은 자기팀 선수들에게 기립박수를 쳐주며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잘했다고 격려해 주는 훈훈한 광경을 연출했다. 아쉽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인디애나에 패배했지만 유잉은 또 다음 시즌을 준비하며 닉스를 이끌어 가려 하였다. 그러나 주변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몇년 전부터 일부 팬들과 언론으로부터 불거져나온 유잉 무용론을 비롯해 트윈 테러를 주축으로 리빌딩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팀은 유잉을 트레이드하는 방안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수많은 루머들이 양산되며 유잉을 들쑤시게 되었는데 유잉 본인도 이제 이런 반응들에 질렸다면서 트레이드가 된다면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지경까지 갔음에도 대부분은 반신반의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유잉을 트레이드하겠느냐 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몇몇 제안이 틀어져서 잔류하는가 싶었으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